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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022년도의 정월대보름이 왔습니다. 

정월대보름이란, 한국의 대표적인 세시 명절의 하나로, 음력으로 새해의 첫 보름날을 뜻하며, 농경사회였던 한국에는 마을간 공동체를 토대로 한해 농사의 풍요와 안정을 기원하는 날이였습니다.  요즘은 농경사회가 아니라 정월 대보름을 기리며, 약식과 오곡밥, 묵은나물, 부럼깨기와 같은 음식을 먹으며 지내고 있습니다. 

그럼 정월대보름에 대해서 하나하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정월대보름의 개요

정월대보름은 음력일로 새해에 처음 들어오는 보름날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옛시대 에서는 농사가 주를 이루었을때는 정월대보름을 가장 큰 명절로도 여겼습니다. 정월대보름을 잘 지냄으로서, 한해 농사의 풍년을 기렀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명절중 하나로 여겼다고 합니다. 그로인해 지역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보름날 자정을 전후로 마을에서 제사를 지냈고, 대표적으로 오곡밥과 같은 절기 음식을 지어 먹으며, 쥐불놀이와 같은 전통놀이를 했다고 합니다. 

 

정월대보름의 유래

정월대보름의 기원은 삼국유사에 기제되어 있습니다. 

신라 시대 소지왕이 대보름에 천천정으로 행차를 위해 궁을 나섰는데 까마귀와 쥐가 시끄럽게 울었다. 그리고는 쥐가 사람의 말로 왕에게 '까마귀가 가는 곳을 따라가 보옵소서' 라고 하자, 임금은 신하들에게 까마귀를 따라가게 했습니다. 

그후 까마귀를 따라 어느 연못에 다다랐을 때, 돼지 두 마리가 싸움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신하는 돼지 싸움을 보다가 그만 까마귀를 놓치기 되었고, 잠시 후 연못에서 노인이 나타나 신하에게 편지 봉투를 주고는 '그 안에 있는 글을 읽으면 두 사람이 죽을 것이오, 읽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을 것입니다.' 라고 하며 사라졌습니다. 신하는 궁에 돌아와 임금에게 노인에게 들었던 말을 전하며, 봉투를 임금에게 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임금은 두 사람보다 한 사람이 죽는것을 선택하였고, 그후 신하는 임금에게 '전하, 두 사람이라 함은 보통 사람을 말하는 것이고, 한 사람이라 함은 전하를 말하는 것이니, 편지의 글을 읽으시옵소서' 라고 하였습니다. 

신하의 말을 듣고는 임금은 일리가 있다고 하며 편지의 내용을 읽어 보았고, 그 안에는 '사금갑: 거문고 갑을 쏘시오' 라고 적혀있었습니다. 

그후 임금은 거문고 갑을 활로 쏜 후에 열어보니 그 안에는 왕비와 어떤 중 이 두 사람이 죽어있었습니다. 이 중은 왕비와 한통속으로 임금을 해치려 했던 것이였습니다 그 뒤 정월 대보름을 오기일이라 하여 찰밥을 준비해 까마귀에게 제사를 지내는 풍속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 후 이 찰밥이 약밥이 되었다고 합니다. 

 

정월대보름 풍습 

정월대보름에 나오는 소지왕의 기록 이전에도 한반도에서는 대보름에 여러 형태의 제사를 지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대보름의 제사는 설날과 같은 명절과는 다르게 가정단위의 제사가 아니고 마을 단위로 제사를 지낸다고 합니다. 

보통의 마을단위의 제사는 대보름날 밤 뒷동산에 올라가 달맞이를 하며 소원 성취를 빌며 그 해의 농사를 점치기도 합니다. 

달빛이 밝으면 많은 비가 내리고, 붉으면 가뭄이 오며, 달빛이 진하면 풍년이 오고, 흐리면 흉년이 든다고 하였습니다. 

대표적인 대보름의 제사들은 하회병신굿, 은산별신제, 전남 해남의 도둑잡이굿, 완도 장보고당제, 전남 보성의 벌교갯제, 충남 연기의 전의장승제, 경북 안동 도산부인당제등이 있습니다. 

 

 

정월대보름의 음식

정월대보름에는 찹쌀과 밤, 대추, 꿀 등을 쪄서 만드는 약식을 만들어 먹습니다. 

그리고 대보름에 유명한 오곡밥을 지어 먹으며, 묵은나물과 복쌈을 먹는 풍습이 있습니다. 고사리 버섯 호박고지 무말랭이 가지나물 산나물 등의 음식을 나물로 무쳐 오곡밥과 먹었습니다. 

옛 조상들은 묵은나물을 먹으면 그 해에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또한 김이나 취잎사귀로 오곡밥을 싸서 먹는 것을 복쌈이라고 하여 복이 들어온다고 믿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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